2017년 8월29일 3박4일 일정으로 광주대교구 성지순례를 다녀왔어요
여섯번째 다산초당으로...
당대 최고의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 경기도 양근 마재에서 태어나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1770년대 후반 서학 서적을 접하면서 천주교와 관계를 맺었고, 그 진리에 매료되어 1784년 수표교에 있는 이벽의 집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을사추조적발사건과 진산사건 등으로 박해가 거세지자 수차례 배교의 뜻을 밝혔으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결국 유배의 길을 떠났습니다.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호를 여유당(與猶堂)이라고 칭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형 약종과 매부 이승훈이 순교의 길을 택한 데 비해 자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뜻으로 그 부끄러움을 표현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정약용은 이 외딴 초당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수백 권의 책을 저술했고, 유배가 풀려 서울로 돌아온 뒤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굳은 신앙을 보여 주었습니다. 유배 중 성직자 영입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완전히 교회로 돌아온 것은 유배에서 풀려난 후로 보입니다. 자신의 배교를 크게 반성한 다산은 대재를 지키며 고신극기의 생활을 하며 외부와 연락을 끊고 묵상과 기도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 중국인 유방제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받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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